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화의 그림들이 복잡해졌다. 배경도 진짜처럼 그리기 시작했고. 흑백 만화는 점점 사라졌고 진짜처럼 색이 들어갔다. 쓱쓱 선 몇 개로 낙서처럼 그리던 만화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뭔가 어이없는 만화들은 꽤 많이 늘어 났지만, 만화 다운 과장은 사라졌다. 야구에서 공이 뱀처럼 휘어 지거나(이상무 <달려라 꼴찌>), 슬라이딩이 아니라 폭탄처럼 빙글 빌글 돌아가는 살인적인 비밀 기술이나(카지와라 잇키, 카와사키 노보루 <거인의 별>), 축구에서 공을 찼는데 골대 그물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과장 말이다.
드럼통을 두드려 비행기를 만들어 보물섬을 찾아가는 그런 패기는 어떨까. (길창덕 <신판 보물섬>) 머리를 때리면 커다란 혹이 솟아나고, 빨리 달리면 다리가 보이지 않고, 좋은 생각이 나면 전등처럼 머리에 불이 들어오는 표현도 찾아보기 힘들다. 완전히 멋진 만화와 어이없는 병맛 만화는 있지만, 만화에서만 볼 수있는 호쾌한 뻥은 찾아보기 힘들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볼 수없는 진짜 뻥, 만화 안에서는 아주 당연한듯 벌어지는 행위나 사건이 바로 만화의 재미다. 만화의 뻥은 인간의 이야기하기(흔히 스토리텔링이라 말하는) 방식과 닮았다. 내가 경험한 일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살이 붙어 점점 거대해 진다. 그렇게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사람들의 바램과 환상이 더해져 이야기로 쌓인다. 설화나 전설과 같은 구비문학이 그렇게 완성된다. 찬찬히 뜯어 보면 그 안에는 다양한 뻥이 있다.
아주 자연스러운 뻥! 지금 만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천연덕스러운 뻥! <정신차려 맹맹꽁>은 오랜만에 만난 뻥이 살아있는 만화다. 맹명규는 엄마가 아파 병원에 입원하고 택시 운전을 하는 아빠가 돌봐줄 수 없어 한번도 본 적 없는 쌍둥이 삼촌과 한동안 지내야 한다. 도시에서 빠져나와 버드나무 밑에서 아빠와 함께 삼촌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저 멀리서 붉은 말을 타고 붉은 머리를 한 괴상한 사내가 나타난다.
보자마자 다짜고짜 "이놈이 니 새끼냐?"고 물어보는 황당한 사내. 명규가 인사하자 "비리비리한 게 지 애빌 똑 닮았네."라고 하며 말에 태워 달려간다. 말을 타고 가면서 맹명규라는 이름이 '매가리'가 없다며, 이름을 '맹맹꽁'으로 바꿔버린다. 말을 달려 커다란 협곡을 뛰어넘어 맹도산에 도달한다.
이렇게 아픈 엄마, 바쁜 아빠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에서 갑자기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넘어간다. ‘2화 맹도산’부터는 맹맹꽁과 삼촌의 황당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천년 묵은 살모사가 쓱 지나가고, 집 안은 잡동사니로 엉망진창. 삼촌은 갑자기 관을 꺼내더니 거기에 누워 자라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바깥에서 삼촌이 곰과 씨름을 하고 있다. 이게 뭐지? 천년 묵은 살모사나 삼촌과 씨름을 한 곰은 한 번 나오고 더 나오지도 않는다. 뭔가 이상하다. 이야기의 법칙 같은 건 산뜻하게 무시한다.
다음 화에서는 아침밥을 먹으러 벼랑 끝에있는 국수집에 가는데, 제대로 먹는게 아니라 강도가 되어 국수집 주인을 묶은 뒤 훔쳐먹는다. 그러다 국수집 주인이 탄 약에 기절해 버리고, 특수 국수가락에 묶여 절벽에 매달린다. 절대 끊어지지 않는 국수가락이 묶여 탈출하려다가 국수집과 함께 계곡 아래로 떨어지고 끝.
이야기의 정합성을 넘어서는 이야기는 구비전승처럼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황당한 이야기가 점프하듯 건너가는 와중에 맹맹꽁이 같은 반 친구들에게 구박을 당한 걸 보여주고, 엄마가 아프고 나서 아빠는 늘 늦게 들어오고 혼자 TV를 보다 잠이 드는 모습을 통해 외로운 소년이라는 걸 강조한다. 외로운 소년의 모험. 아마도 누구나 한번쯤 꿈꾸고 때론 스스로 놀아보았을 황당한 모험이 자유롭게 건개된다. 길어지면 지루할 수도 있는데, 전체 129쪽 딱 적합하다. <정신차려 맹맹꽁!>은 오랜만에 한판 제대로 논 것 같은 만화다. (박인하)
"나는 조금 더 외로운 친구들에게 이 만화가 위로가 되었으면 정말로 좋겠어. 얘들아, 결국 너희들도 어른이 되고 말 거야. 내가 먼저 되어 봐서 아는데 솔직히 매우 재미없어. 그러니 지금이 제일 좋은 때인 거야. 그러니 마음껏,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도 마음껏 즐겁게 살길 바라."(작가의 말)
하민석 글, 유창창 만화 <정신차려, 맹맹꽁!>, 2017,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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